고구려를 찿아서1

꿈나무들과 함께 한 옛 고구려 유적지 여행


SH공사와 우리은행,알프스여행사등이 후원한 가운데 성동사회복지관에서 선발한 초중고생 25명과 함께 지난 7월 5박6일의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탐방을 다녀왔다. 요즘 언론에 주요 뉴스로 떠오른 중국정부의 동북공정프로젝트와 관련된 첨예의 역사현장들이다. 서로가 평소 모른 채 지내다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처음 알게 돼 떠나는 나름대로는 색다른 탐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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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으로 가는 페리를 타기위해 인천항까지 가는 버스안에서 멋적은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눴지만 역시 서로에게 낯설은 표정이 역력하다.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보따리 사업가들로 북적대 상상했던 유람선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옅은 저녁노을이 드리워진 황해바다를 저속으로 가르는 페리는 어둠을 헤치며 밤새 항해를 계속했다. 13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 지난 다음날 아침 중국 단동땅에 도착해 보이는 새로운 풍경에서 비로소 다른 나라에 왔다는 실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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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언제나 일상에서 본 것과 다른 낯설음에서 출발한다.
첫 여정인 백두산 천지 등정을 위해 통화까지 이동하는 버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질문들도 하나 둘씩 쏟아진다. 이번 여정에 참가한 그들은 거의가 다른 또래친구들보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던 이들이다. ‘꿈과 희망을 찿아’를 주제로 이름붙여진 것처럼 이번 여행이 필자에게도 여러가지 생각의 갈래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3일째 이른 아침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향해 이동.. 날씨는 나름대로 화창하다. 날씨가 조변석개해 백두산 천지가 잘 안보일거라는 현지 여행가이드의 말에 불길한 맘을 감출 수 없다. 천지앞에서 탐사단을 사진에 담아 동아일보에 실릴 수 있는 유력한 후보지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천지밑 주차장에 도착하자 마자 멀쩡하던 날씨는 비바람을 뿌리고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 장비를 챙겨 천여개의 계단을 올라갔지만 날씨는 갈수록 태산, 정상에서는 5미터 앞도 채 안보여 동료들조차 분간하기 힘들다. 그 악천후에서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조선쪽 장사꾼이 “백두산란 게 백번 올라와서 두번 천지를 볼 수 있다해서 백두산이다”라고 그러듯한 농담을 건냈지만 실망스런 맘은 가라앉질 않는다.
그나마 학생들은 천지를 반나눠 중국과의 경계를 표시한 표석에서 기념사진들을 찍으며 우리 북한 갔다왔다며 즐거워한다.
우리 민족의 영산,백두산! 그러나 이마저 불행한 역사를 거듭하는 동안 반토막마저 중국령으로 넘어가고 엊그제 중국에서는 올림픽 성화채화를 이곳에서 버젓히 거행했다. 4일차 방문한 옛 고구려수도 집안에서 이런 씁슬한 역사기행은 계속됐다. 입구에서부터 버젓히 그들의 문화유산이며 유네스코에 등록됐다는 번지르르한 문화재 지정 안내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점입가경인 것은 이후 계속된다.광개토대왕릉 앞에서 방문단의 플래카드를 펼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순간 유적지관리인이 호각불고 소리치며 제지하는 게 아닌가! 우리 일행 뿐 아니라 많은 한국관광객들은 의아해하며 분노를 삼켜야했다. 백두산 천지와 고구려 유적지등에서 관광객들에게 이런 횡포를 일삼는 다는 것을 익히 들어왔지만 생각할수록 분이 치민다.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숨겨진 역사문제를 이 현장에서 직접 느끼니 미묘한 감정마저 일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중국인들 스스로 이곳이 우리 조상의 땅임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막는다고 굴복할 우리 민족이 아니다. 2킬로미터 떨어진 장군총앞에서 우리는 기필코 현수막을 펼치고 기념촬영을 하겠다고 벼르며 이동했다. 관리인과 공안을 눈길을 피해 특수작전처럼 순식간에 현수막을 펼치며 촬영에 성공하자 일행들은 역사적 대의를 위해 큰일이나 한 것처럼 깔깔 웃으며 잠깐이나마 긴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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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또다른 묘미는 서로 몰랐던 이들이 친구된다는 것. 무뚜뚝한 표정을 애써 지키며 좀처럼 열지 않았던 마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눈녹듯 녹아내려 아침에 보면 눈인사들을 서로 건네기 시작한다. 문제는 기나긴 버스이동. 평소에 허약한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토,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복지사와 동행간호사 선생님,인솔단원들은 그때마다 헌신적인 보살핌을 보여주었다. 급기야 단동으로 이동해 북한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한 학생이 빈혈기운이 도져 그냥 쓰러지는 비상상황이 벌어졌다. 버스에 내리기 전까지 내 뒷자리에서 시끄러울 정도로 동료와 떠들던 친구여서 모두들 당혹스러웠다. 성동사회복지관 소속 복지사,간호사선생님은 현지가이드와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해 치료받는 동안 저녁먹는 나머지 인원들도 좌불안석. 다행히 큰 문제없이 돌아 온 다음에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 여정이 필자에게 안겨준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헌신’이었다. 체력이 떨어진 학생들과 좀처럼 웃지않는 친구들에게 다가가며 보살펴 준 인솔단 신중호,김세진,홍명숙선생님,성장기 학생들에게 맛있는 식당밥과 고기가 모자랄 때 여행와서는 충분히 맛있게 먹어야 한다며 예산초과임에도 원하는대로 주문해주신 곽인 단장님,뒷자리에서 묵묵히 잡일을 거들어주신 이숭종차장님,강형순사장님,이들의 크고 작은 배려덕분으로 5박6일의 쉽지않은 옛 고구려유적지 탐방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여행의 주제처럼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인솔단은 인솔단대로 각자 꿈과 희망의 실마리를 이번 여행을 통해 찿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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